Vol.137_Jonathan Castro Alejos

Jonathan Castro Alejos

Interviewed by Cinjay Lee

from Netherlands,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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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는 다녀왔는지?

그렇다. 고향인 페루의 리마 집에 방문했고, 근처 고산지대와 몇몇 전통 축제에도 다녀왔다. 가끔 ‘바람'을 좀 쐬며 재충전하는 나만의 방식이랄까.

리마 출신에, 현재는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리마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은 어땠으며, 무슨 계기를 통해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게 되었나?

나의 대가족 구성원 그 누구도 그래픽 디자인이나 예술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유일하게 할아버지께서 20대 시절 페루 민요인 우아이노 밴드에 가담하셨다고 듣기는 했다. 그런 환경이긴 했어도 우린 주말마다 다 함께 모여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걸 즐겼고 언제나 끝 무렵엔 저녁 식사가 대형 파티로 번지곤 했다. 나의 유년 시절에는 언제나 흥과 춤, 음악이 있었다. 90년대 말 아직 이렇다 할 기술적 발전이 없었을 당시 나와 내 친구들은 주어진 것을 갖고 즐거움을 찾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곤 했다. 시간이나 공간에 대한 개념조차 사라진 완벽히 자유로운 상태 안에서 우리는 매 주말 매시간을 ‘디자인'했다. 이러한 습관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나는 여전히 어떤 업무에 돌입하던 즐기는 방식을 찾아낸다.

아무쪼록 이후 고교 시절에는 음악에 빠져 지내며 새로운 세계를 조우했다. 뉴욕의 노웨이브 씬이나 앨리스 콜트레인, 선 라, 알버트 아일러같은 재즈 뮤지션들을 알게 되며 말이다. 그 외에도 다양한 뮤지션들은 내가 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었고, 인생에서 원하고 고대하던 순간을 맞이했을 때의 기쁨을 알게 했으며, 그러한 순간을 위해 실험과 탐구를 지속할 수 있는 힘과 도구를 내게 선사했다. 그 순간을 아는 한, 그 길을 계속해서 걷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후 2016년 참가한 여름학교의 튜터 리자 에네비즈가 현재의 거주지와 커리어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데, 나의 첫 유럽행이었던 그 당시 그녀는 내게로부터 가능성과 재능을 보았고, 다음 해 나는 그들과 함께 일하게 됐다. 이후에는 그래픽 스튜디오인 Metahaven, Bureau Borsche에서 일했고 현재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보르헤스는 언젠가 “예술의 과업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변형하는 것이다. 표식으로, 음악으로 변형하고, 인간의 기억 속에 남을 만한 것으로 변형하는 것, 그건 우리의 임무다.”라고 말했다. 고대와 미래, 심벌과 내러티브 등을 연결해 변형시키는 당신의 작업 방식은 가히 충격적이다.

나의 작업은 방대한 혼합주의를 담고 있다. 나의 흥미를 끄는 여러 세계, 아이디어, 미학 등을 한데 섞어낸다. 그 요소 중 하나는 페루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와 기억이다. 전통과 의식은 내게 언제나 거대한 창작의 원천이며 영감이고, 나는 전반적으로 고대 문화, 그들의 신앙, 의식, 예술, 음악, 고대인들이 어떻게 사물을 바라보고 느끼며 관찰했는지에 대해 큰 흥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만 집중한다면 정적인 상태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과거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잘 배우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대해 사고하며 준비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우리는 미래며, 우리는 곧 이를 창조하고, 우리가 현재 행하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세계의 기억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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